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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몽드드 유정환 프로필, 강남 벤틀리사건 , 박수홍과의 인연

by 파란고양이 2021. 7. 29.

몽드드(Mon Dou Dou)물티슈 ‘유정환’ 박수홍과의 인연

2015년 강남 벤틀리 사건, 2019년 사망 

 

 

2009년  이루마와 함께 아기 물티슈 몽드드 사업 시작

2014년  아기 물티슈 몽드드가 신생아와 임산부에 유해한 화학성분인 4급 암모늄 브롬 화합물 세트리모늄브로마이드를             사용한다는 유해성 논란에 휩싸임 

 

2015년 강남 벤틀리 질주사건 

          마약복용의혹 

          징역 2년 판정

 

2017년 청담 메이드클럽 오픈

2019년 10월 사망 

 


"2009년 회사를 시작한 이후에 급속하게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루마와 제가 이 아기 물티슈 몽드드를 시작했을 때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고객들이 많이 사랑을 해주셔서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루마와 함께 고객들에게 받은 사랑을 어떻게 돌려드릴까 고민을 하다가 '내 자식을 지키는 엄마들이야 말로 가장 용감한 엄마이지 않나'라는 생각에 이르게 됐고, 그들을 돕는 게 우리 유아용품 회사에서 해야 할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2013년 모매체 인터뷰 내용)

 

몽드드 유정환 대표

맨손으로 시작해 연매출 500억 원의 탄탄한 기업으로 키워냈지만 모든 것을 잃는 건 한순간이었다.

 

벤틀리 질주’의 장본인인 아기 물티슈 업체 몽드드(Mon Dou Dou)의 유정환 전 대표가 2019년 10월 사망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몽드드는 한때 아기 물티슈 업계에서 1위를 차지했던 독보적인 브랜드였다. 유 전 대표는 프랑스어로 ‘내 담요’를 뜻하는 몽드드를 2009년 설립했다. 유 전 대표는 몽드드를 피아니스트 이루마 씨와 동업 관계로 시작했다.

 

몽드드 물티슈 설립 

유정환 전대표는 2009년 29살의 나이로 유명 피아니스트인 이루마씨와 함께 800만원의 자본금으로 몽드드를 설립했다.

이후 '이루마 물티슈'라고 불리며 온라인몰에서부터 판매를 시작하여 주부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 기하급수적인 기업 성장을 통해 백화점 입점, 연매출 500억원을 달성하며 물티슈 업체 1위로 급부상하였다.

 

그러나 2014년 9월 유해물질 논란이 일어 큰 위기를 겪었다. 

한 언론사에서 몽드드 제품에 세트리리모늄 브로마이드라는 독성물질이 함유되어 있다고 폭로를 하였으며 아기들이 주사용자이기 때문에 안전성 문제에 민감할수밖에 없던 주부들의 항의로 당시 홈페이지가 다운될 정도로 환불요청과 항의가 밀려 들어와 하루아침에 폐업 위기까지 추락하게 되었다. 

 

한순간 1위 업체에서 독성물질이 든 제품을 판매한 양심불량 업체가 되어버린 몽드드는 전 사원이 나서 고객들의 마음을 돌릴 눈물어린 문구로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지만 고객들의 분노는 쉽게 사라앉지 않았고 결국 전제품 교환, 환불 조치를 시행하게 되었다. 

이후 2014년 12월 정부의 공식조사 결과 발표로 안정성에 대한 증명이 되어 사태는 마무리 되었지만 몽드드는 3개월동안 총 7만명이 넘는 고객들의 환불, 교환 요청으로 인해 부도 직전의 상태까지 치달을 정도로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회생 불가능 상태로 보이던 몽드드가 위기 속에서도 살아 남아 유정환 대표는 다시 한번 세상의 스포트라이를 받게 된다. 

독성 물질 논란이후 몽드드 전대표이사인 유정환의 경영능력과 위기대처능력에 대해 세상의 관심이 높아지게 되면서 유정환은 세바시등의 프로그램등 다양한 곳에서 강연과 인터뷰 제의를 받게 되어 그동안의 이야기를 풀어 놓으며 유명세를 타게 된다. 

 

그는 이 과정에서 1980년 화성 외곽 지역에서 태어난 유정환은 유년시절 친부모님이 아닌 현재의 부모님에게 입양이 되어 자랐고 입양 사실을 중학교 시절에 알게 되어 많은 방황을 했으며 이런 과정 때문에 20대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는 개인사를 밝혔다. 영국 유학중에 유정환은 가수 이루마를 만나 인연을 맺게 되어 몽드드를 같이 출시하게 되었다는 것.

 

그러나 자수성가한 유망 청년사업가 유정환이 논란의 중심에서 벗어난지 불과 1개월 후인 2015년 1월 

그는 이해할수 없는 사고를 내게 된다. 일명 '강남 벤틀리 폭주사건' 이다.

 

 

강남 벤틀리 사건 

 

2015년 세상에 충격을 준 ‘벤틀리 엽기 질주 사건’이 일어났다. 서울 강남구 도산사거리 일대에서 최고급 외제차인 벤틀리가 도로를 휘젓고 다녔다. 차량 3대를 연달아 들이받아 그 가운데 한 대는 전복되기까지 했다. 사고의 충격으로 벤틀리 차량의 바퀴가 빠졌지만 그 상태로 500m가량을 더 달렸다. 차량이 멈춰 서자 운전자는 갓길에 세워져 있던 아반떼를 훔쳐 타고 다시 질주하다 금호터널 인근에서 BMW와 충돌한 뒤 겨우 멈췄다.

 

운전자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BMW에 타고 있던 여성 운전자의 어깨를 폭행하고 출동한 경찰 앞에서 옷을 벗어던지며 난동을 부렸다. 이런 충격적인 장면은 CCTV에 담겼고 방송에 그대로 나와 시청자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그 질주의 장본인이 평소 정직한 기업을 표방하며 사회공헌활동에 앞장섰던 유정환 전 대표였기에 충격은 배가됐다. 주변 평판이 상당히 좋았던 그에게 씌어진 마약 의혹과 엽기 질주 사건은 알려진 그의 모습과 상당히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경찰에 체포된 유 전 대표는 횡설수설했고 정신이 혼미해 보였다. 특히 벤틀리 질주 이후에 피해 여성을 때리고, 경찰에 체포된 뒤에는 옷을 벗고 항의하는 등 이상행동을 보인 부분이 의혹을 증폭시켰다.

 

그는 엽기 질주 이유로 불면증으로 처방받은 수면제를 과다복용한 탓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소변과 머리카락을 분석한 결과 필로폰으로 불리는 매스암페타민 양성반응이 나왔다.

또한 수사 과정에서 유 전 대표는 2015년 1월 직원들에게 ‘병원에서 처방을 받아 졸피뎀을 구해 오라’고 지시한 뒤 이를 전달받아 투약했다고 알려졌다. 벤틀리 ‘분노의 질주’도 마약성 수면유도제 졸피뎀으로 인한 환각 상태에서 벌어진 셈이다. 결국 유 전 대표는 2015년 5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차량 등 혐의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징역 2년 실형을 선고 받았다. 

 

대표이사 사직, 출소후 M&A업계 진출

유 전 대표는 사고를 낸 직후 대표이사 직을 내려놓았다. 유 전 대표와 친분이 있는 한 인사는 “유 전 대표가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발 빠르게 대표이사 자리를 내려놓았다. 실제로 대표이사를 교체한 건 아니고 일단 위기 모면 식이었던 것으로 안다”면서 “감옥에서도 옥중 경영을 했다고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유 전 대표는 감옥을 나온 뒤 몽드드를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매각 대금과 그동안 모아놓은 자금으로 그는 M&A(인수·합병) 업계에 뛰어들었다고 전해진다. M&A 업계에서 유명한 조직폭력배 출신 A 씨의 권유가 결정적이었다고 전해진다. 한때 물티슈 업계 1위였던 만큼 실탄은 충분했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2017년 청담 메이드클럽 오픈, 박수홍과의 인연 

감옥에서 출소한 후 유전 대표는 2017년 청담 메이드란 클럽을 오픈하였는데 

박수홍이 오픈파티에도 간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유정환과 박수홍이 친했기 때문에 박수홍의 가족들도 유정환을 알고 있다고 알려지기도 하였다.

유정환이 청담메이드클럽을 운영했기 때문에 박수홍은 그 클럽에 자주 놀러간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후 박수홍이 클럽문화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된 것으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계속되는 실패와 죽음

하지만 새로운 도전은 암초에 부딪혔다. 번번이 실패하면서 그 많던 돈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막판에는 유 전 대표가 직접 수천만 원을 빌리러 다니는 처지까지 됐다고 한다

결국 유 전 대표는 모든 돈을 잃고 그가 자란 화성시 송산면으로 돌아갔다. 화성시 송산면은 그의 부모 집이 있는 곳이다. 유 전 대표가 돈을 많이 벌었을 당시 부모에게 마을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2층 집과 비싼 개들을 선물했다고 한다. 유 전 대표는 이 집 2층에 폐인처럼 틀어박혔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이 찾아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2019년 10월 유 전 대표가 사망했다. 벤틀리를 타고 강남을 질주했던 그는 삶의 마지막을 조용한 시골 마을 2층집에서 맞았다고 알려진다. 극단적인 선택은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건강 악화였다. 다만 주변 사람들은 그의 죽음이 유 전 대표 스스로 선택한 것처럼 보였다고 입을 모은다. 한 주변 인사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다. 그럼에도 스스로 죽음으로 달려갔다는 건 확실하다”고 말했다. 장례식은 화려했던 생전 명성과 달리 조용하게 치러졌다고 한다. 

 

유 전 대표의 오랜 친구는 “그는 죽기 2~3년 전부터 사람들의 신망을 많이 잃었다. 감정이 요동치는 경우가 많아 모두 힘들어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유 전 대표의 화려했던 연예계 인맥들이 잠시나마 발걸음을 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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